[한국 미신 시리즈] 18. 조문하고 돌아오면 왜 화장실부터 갈까?
조문하고 돌아오면 왜 화장실부터 갈까?
오늘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친구 곁에 있다가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는데, 평소처럼 바로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화장실부터 갔습니다.
손을 씻고 나서야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부터 이런 말을 참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상가집 갔다 왔으면 바로 방에 들어가지 마라.”
“손부터 씻어라.”
“화장실부터 다녀와라.”
집안에 따라서는 옷을 갈아입기도 하고, 소금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집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정말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무언가 좋지 않은 것이 따라온다고 믿었던 것일까요?
죽음과 함께 따라온다고 믿었던 ‘부정’
우리 조상들의 민간신앙에서 죽음은 단순히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사건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죽음과 주검은 두려움과 꺼림의 대상이었고, 민간신앙에서는 이를 ‘부정(不淨)’과 연결해 생각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부정은 재앙이나 질병을 일으킨다고 여겨졌던 생리적·물리적·정신적·윤리적인 더러움을 뜻하는 민간용어입니다.
특히 한국 민속에서 죽음은 대표적인 부정의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주검에 대한 두려움뿐 아니라 죽음 자체가 주는 공포감도 그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죽음과 관련된 장소에 다녀온 뒤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에 ‘깨끗하게 한다’는 행동이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이런 생각은 여러 가지 금기와 생활습속으로 이어졌습니다.
상가에 다녀오면 소금을 뿌리기도 하고, 몸을 씻거나 옷을 갈아입기도 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민속 자료에서도 장례식에 다녀온 뒤 집 안으로 부정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문 앞에 소금과 고춧가루를 뿌리는 사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상문살’을 피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여기서 함께 등장하는 것이 바로 ‘상문살(喪門煞)’입니다.
예전에는 상가에 다녀온 뒤 병이 나거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상문을 들었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상문풀이’ 자료에서도 상사로 인해 생긴 부정을 풀기 위한 무속의식이 있었으며, 상가에 다녀온 뒤 병을 얻는 경우를 ‘상문들었다’고 여겼다는 기록이 확인됩니다.
즉, 장례식장에 다녀온 뒤 무엇인가를 씻어내거나 털어내려 했던 행동에는 단순한 위생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화장실이었을까?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화장실부터 가라’는 말은 지금도 꽤 익숙하게 들리지만, 이 행동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어느 지역에서 처음 생겨났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기록은 찾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옛날 조선시대부터 반드시 화장실에 먼저 갔다”거나 “이것이 바로 상문살을 없애는 전통적인 방법이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오히려 오래된 ‘부정’과 ‘정결’의 관념이 시대를 지나면서 각 가정의 생활방식과 결합해 여러 형태로 이어졌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어떤 사람은 손을 씻고,
어떤 사람은 샤워를 하고,
어떤 사람은 옷을 갈아입고,
어떤 집에서는 소금을 사용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집에 들어오자마자 화장실에 먼저 들르는 습관으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미신일까, 생활습관일까?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장례식에 다녀왔다고 해서 나쁜 기운이나 상문살이 실제로 사람에게 옮는다고 볼 과학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행동을 단순히 ‘쓸데없는 미신’이라고만 치부하기도 어렵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했던 옛사람들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마음의 장치였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손을 씻는 행동은 실제 위생에도 도움이 되고, 옷을 갈아입거나 몸을 씻는 것은 장례식장에서의 긴장과 피로를 털어내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오래된 민간신앙과 현실적인 생활습관이 서로 섞이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하면 꽤 흥미롭습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조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화장실로 향했을 것입니다.
아마 그 사람도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냥 어릴 때부터 그렇게 했으니까.”
저 역시 오늘 그렇게 했습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방으로 가지 않고 화장실에 들러 손을 씻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묘한 일입니다.
옛사람들이 죽음 뒤에 남은 ‘부정’을 씻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했던 행동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몸에 습관처럼 남아 있는 것이니까요.
조문하고 돌아오면 화장실부터 가는 것
정확한 시작점은 알 수 없지만, 그 안에는 죽음을 두려워했던 옛사람들의 마음과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마음이 함께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밤 집에 돌아와 저도 손부터 씻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혹시… 조문하고 돌아오면 제일 먼저 화장실부터 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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