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신 시리즈] 14. 베개를 세워 두면 빚을 진다
베개를 세워 두면 빚을 진다? 어릴 때 엄마가 했던 그 말
어릴 때 집에서 베개를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한 번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베개 세워 놓지 마라. 빚진다.”
저도 어릴 때 어른들에게 비슷한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 옛날 기억이 떠오릅니다.
도대체 베개를 세워 놓는 것과 빚을 지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말입니다. 베개를 잠시 세워 놓는 것뿐인데 왜 하필 ‘빚’이라는 말까지 등장했을까요?
오늘은 우리 주변에서 전해져 내려온 이 독특한 생활 속 금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베개를 세워 놓으면 정말 빚을 질까?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베개를 세워 놓는다고 실제로 빚이 생긴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또한 ‘베개를 세워 두면 빚을 진다’는 말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되었다는 확실한 기록도 찾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를 전통적으로 확립된 하나의 미신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예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생활 습관을 가르치면서 전해주던 생활 속 금기나 속설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아이들에게 긴 설명을 해 주기보다는 짧고 강한 말로 행동을 금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
“복 나간다.”
“병난다.”
“재수 없다.”
그리고 때로는 “빚진다”라는 말까지 등장했던 것이죠.
그런데 왜 하필 ‘빚’이었을까
여기에서부터가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정확한 유래가 확인되지 않는 만큼 이것을 하나의 정답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옛날 사람들에게 빚이라는 것은 지금보다 훨씬 무겁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먹고사는 일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작은 돈 하나도 귀했고, 남에게 돈을 빌린다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집안의 큰 부담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빚진다’는 말은 단순히 돈을 빌린다는 뜻을 넘어,
살림이 어려워진다.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생활이 기울어진다.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아 아이들에게 경고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확정된 역사적 유래라기보다는 옛 생활문화를 바탕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해석입니다.
베개를 세우는 행동이 왜 눈에 띄었을까
베개는 우리 생활에서 아주 가까운 물건입니다.
하루의 마지막에 머리를 기대고 잠을 자는 물건이면서, 집안에서는 잠과 휴식을 상징하는 물건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예전에는 베개를 지금처럼 장식용으로 여러 개 두거나 아무렇게나 다루는 물건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잠을 자는 사람의 머리를 받쳐주는 중요한 생활용품이었죠.
그렇다 보니 베개를 발로 밟거나, 함부로 던지거나, 세워 놓고 장난치는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어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이에게
“베개는 그렇게 가지고 노는 물건이 아니다.”
라고 설명하는 것보다,
“베개 세워 놓으면 빚진다.”
라고 말하면 훨씬 강하게 기억에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베개를 밟으면 키가 안 큰다는 말도 있다
베개와 관련된 금기는 이것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른들에게 흔히 들었던 이야기 가운데는
“베개를 밟으면 키가 안 큰다.”
라는 말도 있습니다.
물론 베개를 한 번 밟았다고 해서 키가 자라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베개를 밟지 말라고 가르치기에는 꽤 효과적인 말이었을 것입니다.
“베개 밟지 마!”
라고만 하면 아이가 왜 안 되는지 궁금해할 수 있지만,
“그러면 키 안 큰다.”
라고 하면 갑자기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아이에게 키가 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니까요.
이처럼 옛날의 생활 속 금기에는 실제 과학적인 인과관계보다는 아이들이 특정 행동을 하지 않도록 기억하기 쉬운 이야기를 덧붙이는 방식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신이라기보다 ‘생활 속 교육’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가장 먼저 ‘미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습니다.
베개를 함부로 다루지 말라는 것.
잠자리 주변을 깨끗하게 하라는 것.
생활용품을 소중하게 사용하라는 것.
이런 행동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재미있고 무서운 이야기를 붙였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그 말 속에는 당시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생활 태도가 들어 있었던 셈입니다.
엄마가 해준 말은 오래 남는다
이런 생활 속 미신이 재미있는 이유는 꼭 대단한 역사적 기록이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오래전 엄마가 해준 한마디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베개 세워 놓지 마. 빚진다.”
어릴 때는 정말 그런 줄 알고 베개를 다시 눕혀 놓았지만, 어른이 되고 나면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엄마는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어쩌면 엄마도 자신의 어린 시절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준 것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한 세대의 말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작은 생활 속 미신이 되어 남게 되는 것이죠.
정말 빚을 지게 될까
아닙니다.
베개를 세워 놓았다고 해서 빚을 지게 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단순히 “말도 안 되는 미신”이라고 웃어넘기기에는 조금 아쉬운 면도 있습니다.
그 안에는 옛날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아이들을 가르치던 방법, 그리고 부모가 자식에게 나쁜 일을 피하라고 당부했던 마음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사실 여부를 떠나 우리 생활문화의 한 조각으로 바라보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베개를 한번 바라보세요.
혹시 무심코 베개를 세워 놓았다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도 이 말 했었는데?”
과학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래전 누군가가 건네준 그 한마디는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베개를 세워 두면 빚을 진다.
어쩌면 이런 것이 바로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들어온 생활 속 미신의 재미 아닐까 생각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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